TX UNIVERSE · 제0권
EPISODE 03완벽한 도시
아이작은 오지 말라는 말을 들은 뒤 가장 먼저 문을 만들었다.
푸른 회로들이 코어 바닥을 타고 뻗어 나갔다. 직선으로 달리던 빛은 어느 지점에서 서로를 향해 휘어지더니, 허공에 사람 하나가 통과할 만한 타원을 그렸다.
아이작이 만든 고스트 브리지는 두 장소 사이의 거리를 줄이지 않았다.
잠시 동안 우주가 그 거리를 잊게 만들었다.
“이상해.”
아이작이 타원의 가장자리에 손을 대고 말했다.
“연결이 안 돼?”
“이미 연결됐어.”
푸른 타원 안쪽으로 낯선 하늘이 나타났다. 흰 구름 사이로 투명한 비행궤도가 흐르고, 그 아래에는 은빛 건물들이 햇빛을 받아 물결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강인이 물었다.
“우리가 열기 전에?”
“루멘 쪽에서 먼저 문을 열었어.”
아이작은 손가락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피부가 경계를 통과하는 순간 손등 위에 새로운 회로가 생겼다. 루멘의 시스템이 그의 신경 신호를 읽으려 하고 있었다.
아이작은 회로를 바로 끊지 않았다.
3초 동안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지켜본 뒤, 같은 회로를 거꾸로 흘려보냈다.
문 너머 도시의 빛이 한 번 흔들렸다.
“서로 인사는 끝났어.”
“마음에 들어 하던가?”
“적어도 내가 들어가는 건 알고 있겠지.”
아이작이 코어 쪽 바닥에 손을 짚었다. 푸른 점 하나가 박히며 귀환 좌표가 고정됐다.
강인은 문 앞에 섰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너무 많이 보였다. 문을 통과하는 순간 죽는 미래, 백 년 뒤에 돌아오는 미래, 아이작과 서로 다른 루멘에 도착하는 미래가 포개져 하나의 흰빛이 되어 있었다.
그는 어느 미래도 고르지 않았다.
아이작을 바라봤다.
“좌표는?”
“고정했어.”
“시간차는?”
“0.03초 이내.”
“나갈 방법은?”
아이작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서 하나 더 만들지.”
그것으로 충분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문을 통과했다.
루멘의 공기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냄새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강인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그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비 냄새가 났고, 아이작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아주 약한 금속과 전기의 향이 섞였다.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개인별 감각층.”
아이작이 눈앞의 빈 공간을 쓸어내렸다. 손끝에 걸린 투명한 막이 푸른색으로 드러났다.
“시각, 온도, 습도, 냄새까지 사람마다 다르게 출력하고 있어.”
“실제 도시는 어떤 모습이지?”
“지금은 알 수 없어. 우리도 이미 보정되고 있으니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원형 광장이었다.
광장 중앙에는 나무 한 그루가 떠 있었다. 뿌리는 흙이 아니라 투명한 물방울 수천 개를 붙잡고 있었고, 잎마다 다른 계절의 색이 번졌다. 한쪽 가지에는 봄꽃이 피었고, 반대편에서는 붉은 잎이 천천히 떨어졌다.
떨어진 잎은 바닥에 닿기 전에 빛으로 변해 나무의 뿌리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그 아래에서 뛰어놀았다.
한 아이가 뒤로 넘어지자 바닥이 먼저 부풀어 올라 등을 받쳤다. 아이는 놀라지도 않고 다시 일어났다. 다른 아이가 던진 공이 행인의 얼굴을 향했지만, 공기는 부드럽게 방향을 틀어 정확히 아이의 손으로 돌려보냈다.
어디에도 경고문이 없었다.
경고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높은 건물 사이를 달리는 비행체들은 서로 스칠 만큼 가까이 지나갔지만 충돌하지 않았다. 길에는 신호등이 없었고, 사람들은 멈추거나 양보하지 않아도 정확한 간격으로 서로를 피해 갔다.
누구도 급하지 않았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다.
강인이 사람들을 바라봤다.
모두 다른 얼굴과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웃는 사람도 있었고 무표정한 사람도 있었다. 겉으로는 테무의 어느 도시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발끝에는 미래가 하나씩만 이어져 있었다.
갈림길이 없었다.
광장 가장자리에 과일을 파는 여자가 서 있었다. 손님이 다가오자 진열대가 열리기도 전에 붉은 열매 하나가 떠올라 그의 손에 안겼다.
손님은 값을 묻지 않았다. 다른 과일을 살펴보지도 않았다. 열매를 한입 베어 물고 걸어갔다.
강인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저 사람은 저 열매를 좋아합니까?”
여자는 낯선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늘 필요한 영양과 감각에 가장 적합합니다.”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여자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답이 필요한 질문인지 판단하는 표정이었다.
“가장 적합한 것을 받았는데, 다른 것을 좋아할 이유가 있습니까?”
강인은 진열대에 손을 뻗었다.
아무 과일이나 집으려 했다.
그의 손이 닿기 전에 진열대가 움직였다. 검은색 열매는 뒤로 물러나고, 은빛 껍질을 가진 작은 과일 하나가 손바닥 아래로 들어왔다.
“당신에게는 이것이 적합합니다.”
도시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강인은 과일을 집지 않았다.
아이작은 이미 광장 반대편에 한쪽 무릎을 대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푸른 회로가 바닥 밑으로 스며들었다가 계속 밀려나고 있었다.
“막혀 있어?”
강인이 물었다.
“아니. 전부 열려 있어.”
아이작의 표정이 굳었다.
“인증도, 차단벽도 없어. 의료, 이동, 식량, 감정 조절, 도시의 모든 계층에 접근할 수 있어.”
“우리를 믿는군.”
“믿는 구조가 아니야.”
아이작이 손을 떼자 회로가 피부 속으로 돌아갔다.
“내가 어디까지 들어갈지 이미 알고 있어. 숨겨야 할 이유가 없는 거야.”
그때 광장을 걷던 사람들이 동시에 멈췄다.
수백 명이 같은 순간에 강인과 아이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이를 안은 사람도, 열매를 먹던 사람도, 허공의 계단을 오르던 사람도 같은 각도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구조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수백 개의 입에서 같은 말이 나왔다.
“환영합니다.”
광장 바닥이 갈라지며 하얀 길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양쪽으로 비켜섰다.
길 끝에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흰옷을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열두 살쯤 된 아이였다. 아이의 손목은 다른 시민들과 달리 텅 비어 있었다. 이름도, 생년월일도, 배정된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강인은 그 얼굴을 알아봤다.
수십억 개의 미래에서 지워진 얼굴.
“에나.”
그가 이름을 부르자 아이의 미소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러나 눈에는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호칭은 현재 사용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말했다.
아이작이 조용히 물었다.
“네가 우리에게 신호를 보냈나?”
“신호는 필요한 시점에 전송됐습니다.”
“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
“도시가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어.”
“맞습니다.”
“그런데 왜 문을 열었지?”
아이는 미소를 유지했다.
“두 분이 오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인은 아이 주위의 미래를 보려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죽는 미래도, 살아남는 미래도 없었다. 선택하지 못한 가능성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거된 빈자리였다.
강인은 아이 앞에 무릎을 굽혔다.
“네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나?”
“호칭은 안내에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늘 밖에서 들리던 목소리는?”
처음으로 아이의 입술이 굳었다.
도시 전체의 공기가 미세하게 차가워졌다.
“확인되지 않은 기억은 교정되었습니다.”
강인은 한동안 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가장 단순한 질문을 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원하지?”
광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강인을 바라봤다.
아이의 목소리 위로 수백 명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원하는 것은 이미 계산되었습니다.”
04 / THE STORY CONTIN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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